너와의 쑥스러운 두번째 만남

-뽀순이의 사슴벌레 사육기 01-

 

 

 

 

 

이 작은 생명체를 처음 접하게 된지 벌써 15년도 더 되어버렸구나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 이사를 갈 때마다 짐을 모두 뺀 베란다에 말라 비틀어진 모습으로 날 안타깝게 만들곤 했으니..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되어 장모군을 만나고 이 작은 생명체를 보다 적극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그들만의 언어로 蟲人(충인)이 되었다고들 하지. 그의 집에 있는 사슴벌레들을 보고 자극을 받은 나는 더 크고 아름다운 곳에

 

제대로 길러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근처 재개발구역에 버려진 거대한 수조를 스케이트보드 위에 얹어 20여분을 끌고 집으로 가져왔다.

 

너무나 무거웠기 때문에 건장한 남생 두명이 땀을 뻘뻘 흘리며 가져와야했는데, 가져와서 보니 역시 허접한 플라스틱보다

 

 유리로 된 수조가 짱이야~ 뭔가 있어보이지 않은가!

 

 

 

 

 친구가 알려준 모 거래처에 톱밥과 사육용품들을 저렴하게 (수조에 들어갈만큼 몹시 대량으로) 구입해

 

 타워펠리스급(당시에는 유명했지) 저택을 완성한 후 신도림에 있는 장풍이닷컴 오프라인매장을 찾아가

 

장수풍뎅이 한 쌍을 구입해 입주시켰다.

 

 

 

 

 

 

저택에 입성한 그들은 도무지 내가 알던 장수풍뎅이가 아니었다.

 

밤낮으로 요상한 소리를 내며 날갯짓을 하고 충만한 정력으로 눈 앞에 있는 모든 것과 번식을 할 기세로 저택을 휘젓고 다녔다.

 

그 뒤로 나는 그들을 정력풍뎅이라 부른다. 장수풍뎅이는 음란한 곤충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음란풍뎅이의 암컷은 머지않아 알을 낳기 시작했고 수컷은 에너지 소모가 컸는지 영원히 쓰러지고 말았다.

 

적게 봐도 30개 이상의 알을 낳고 힘을 다한 그들에게 내가 이름도 붙여주지 않았었다니.. 매정한 놈이었구나 난.

 

며칠 지나지않아 수조는 장수풍뎅이의 애벌레들로 우글거리기 시작했고, 풍뎅이로 자라나 정력을 과시했다.

 

 

 

 

 

수험생이 되면서 차츰 곤충에 대해 소홀해지고 자연스럽게 풍뎅이들과 이별하게 되었다.

 

내 보살핌이 없어도 번식은 잘 하겠지, 애들아?

 

 

 

 

 

6년 후, 우연히 사슴벌레가 다시 기르고 싶어졌다.

 

충인(蟲人)의 피는 속일 수 없는 것인가

 

하지만 이번엔 요란한 정력풍뎅이들 말고 조금 얌전한 녀석으로 기를 계획을 세웠다.

 

 

 

 

 

'생각해보니 집 근처 뒷산에 애사슴벌레가 잔뜩 있었어.'

 

하지만 애사슴벌레가 있던 썪은 나무더미들은 이미 치워져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해질녘 산책을 하고 있는데

 

여기저기 뿜어져 나오고 있는 수액 나무들. 참나무다.

 

 

 

 

'누가 사슴벌레 잡으려고 바나나 설탕 물인가 그거 발라놨나?'

 

처음엔 누가 발라놓은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하얀 수액이 뿜어져 나오고 있던 것.

 

나무의 크기도 상당했고, 집에서도 아주 가까워 산 깊이 들어갈 필요도 없어 눈여겨봐두었다.

 

날이 조금 더 어두워졌지만 내친김에 더 깊히 들어가 보았다. 군생활을 할 때 야간에 초병근무를 서보아서인지

 

야산도 무섭지 않을 줄 알았는데 혼자가니까 무서워서 도망 갔다가 용기를 내서 두번째 포인트에 도착했다.

 

 

 

 

 

 

"오, 여기 있다."

 

조용히 수액을 먹고 있는 사슴벌레 3마리.

 

애사슴벌레한마리는 아래쪽에, 턱이 조금 다르게 생긴 큰 수컷녀석과 암컷녀석이 함께 위쪽에 있었다.

 

 

기쁜마음으로 다이소에서 구매한 플라스틱 통에 수피와 함께 집어넣었다.

 

 

7년전만 해도 집근처에는 애사슴벌레 밖에 없었는데, 이녀석은 뭐지?

 

 

 

감정 결과 5cm가 조금 넘는 크기의 이 녀석은 참넓적사슴벌레였다.

 

넓적사슴벌레보다는 크기가 작고 턱의 형태는 비슷하지만 더 둥그렇게 휘어있는 개체.

 

 

 

 

 

최근에 본 사슴벌레라고는 작은 애사슴벌레(4cm정도)와 다우리아 사슴벌레 밖에 없던터라

 

그보다 조금 더 큰 개체를 보니 사육욕에 불이 붙는다.

 

아.. 산을 매일 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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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D 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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